

외관
바람이 불면 번지는 들불처럼 너울거리는 다홍색 머리카락의 끄트머리는 노랗게 물들어 있다. 파빌라 리우를 마주하는 모든 이들은 그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떠올리곤 했다. 눈길을 잡아끄는 데다 부피까지 상당한 머리칼은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파빌라를 단번에 찾을 수 있게끔 해주는 상징이었다. 이전에는 활동적으로 움직일 때 머리를 끈으로 질끈 묶기도 했지만, 이리저리 뻗쳐 있는 탓에 묶어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자연스레 풀어헤친 채로 지내고 있다.
사람들은 으레 불꽃을 열정에 비유한다. 그러나 단정한 이목구비가 그려내는 덤덤하고 무심한 얼굴은 뜨거운 색채를 미지근하게 내리눌렀다. 잿빛 홍채와 붉은 동공 어디에서도 정열은 찾아볼 수 없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동자는 천천히 깜박이고, 특별할 것 없는 군복을 걸쳐 입은 장신은 나긋하고 느슨하게 움직인다. 원체 움직임이 조용하기에 일부러 몸을 사리지 않아도 기척이 거의 없는 편. 그 탓에 이따금 다른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체격에 비해 넉넉한 점퍼를 걸치나, 곳곳의 호주머니 안에 이상 발현의 보조 도구인 잡동사니들을 한가득 채워 다니기 때문에 품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별도의 주머니들 또한 잡동사니를 담는 용도.
이상 및 전투방식
판타 레이 / 진화
연료는 불꽃이 되고, 불꽃은 재를 남긴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그 어떤 것도 이전과 같지 않다. 고대의 학자가 그린 세계의 법칙은 그로부터 이천여 년이 지나 달에서 태어난 소녀의 손에서 재현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을 불로 변화시키는 힘. 파빌라는 자신의 이상에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 ”는 그리스어 이름을 붙였다.
물질에서 시작된 불씨는 일정 수준 몸집을 불릴 수 있으며, 20분 가량 파빌라의 의지를 따라 움직인 후 재로 화한다. 여러 개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고, 질량을 가지는 물질이라면 고체·액체·기체를 가리지 않고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불의 시작점이 될 물질이 눈에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변환의 성공률이 극도로 하락하므로 항상 연료 역할을 하는 잡동사니를 넣은 주머니를 휴대하고 다닌다.
상황에 따라 공격과 치료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전투 요원. 파빌라가 지휘하는 판타 레이의 불꽃은 상반되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타지 않은 것을 불태워 재로 변화시키는 파괴성, 그리고 본래 진행되어야 할 자연스러운 재생의 과정을 촉진하여 신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순환성. 후자의 경우 치료 시 화상을 입었을 때와 유사한 열감을 동반하나, 재생이 끝나는 순간 통증은 씻은 듯 사라진다. 재생의 속도가 생명력이 소진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상을 사용한 치료는 무용하다. 중상보다는 경상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 공격 용도일 때는 정교한 컨트롤로 약점을 노린 후, 불꽃이 목표 지점에 근접했을 때 화력을 폭발적으로 올리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성격
미온한 다정 | 변함없는 중심 | 느릿한 완벽주의자 | 한 겹 덮어둔 냉담함
무뚝뚝한 표정 탓에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나, 의외로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이나 행동은 온화하다.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거나 친교를 나누며 낯선 사람과도 곧잘 대화하는 편. 그러나 타인과의 사적인 거리를 일방적으로 좁히며 적극적으로 손을 뻗는 일은 드물다. 파빌라는 상대가 용인한 선에 머무르며 작은 촛불처럼 미약한 온기를 나누어줄 뿐이다.
겉으로 내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감정. 둘 모두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모습은 만사에 방관적인 것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그는 결코 속한 상황에서 외부인이나 방관자의 태도를 자처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상황을 올곧게 마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기에 파빌라 리우는 언제나 안정적이다. 장난으로 평정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의 평정심에 기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으므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파빌라의 주변에는 사람과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내면이 평온하다는 것은 곧 여유롭다는 뜻으로, 파빌라의 말과 행동에서는 조급함을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하게 마치고 다음 단계를 밟는다. 서두르지 않고 주어진 일을 흠 없이 끝마치는 것은 분명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신속함을 요하는 전투 훈련에 임할 때도 다르지 않았기에, 멸망의 전초에 서는 몇몇 사람들은 파빌라의 성정을 답답하게 여기곤 했다. 몇 번의 충고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고집이었다.
원만한 성격와는 별개로 ‘문차일드’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염세적이고 냉랭한 구석이 존재한다. 그는 대단한 선인도, 사명감으로 가득한 영웅도 아니기 때문에.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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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정 | 연구섹터 카러마트에서 인공 포궁과 배양액을 통한 인공수정으로 탄생했으며, 보육원에서 4살을 맞이했을 무렵 입양 의사를 밝힌 중국계 미국인 부부에 의해 입양되었다. 대인관계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는 시점에 보육원 아이들과 심리적 유대를 맺은 기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거의 양부모의 영향 아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파빌라라는 이름은 보육원에서 지낼 적 불리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 성씨는 부계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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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관계 | 네오메니아로 이주하기 전까지 큰 화구와 가스불을 사용하는 중식 요리사였던 부부는 탄소가스 사용을 지양하는 월면도시의 보육원에서 그립고도 아름다운 색을 발견했다. 부부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린 파빌라의 머리색에 무심코 이끌렸다고 말하곤 했다. 양부모와 파빌라, 셋으로 이루어진 가족 간의 관계는 상당히 좋은 편. 부부는 파빌라를 성심껏 양육했고, 파빌라 또한 부부를 부모로서 사랑했다. 불화 없이 따스한 애정을 주고 받는 가족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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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각 | 파빌라를 입양한 리우이첸과 우진옌 부부는 문화섹터 훼이우에서 중식당 ‘만월각(滿月閣)’ 을 운영하고 있다. 중식당으로 표기하나 중식 레시피를 변형한 퓨전 음식들이 가게의 주요 메뉴로 취급되고 있기에 실질적으로는 퓨전 음식점이라고 볼 수 있다. 가게는 차이나타운 진입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불호의 편차가 적어 무난하게 방문하기 좋은 식당이라는 평을 받는다. 네오메니아의 유명 음식점을 꼽을 때 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곳. 만월각이 붐비는 날 가게 일을 보조하는 다홍색 머리카락의 소녀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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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틸루카 제 1 고등학교 | 현재 3학년 B반. 조기입학으로 1년을 월반했고, 군사훈련에서 과락 점수를 받아 유급했다.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파빌라의 첫 번째 1학년은 조용한 방황의 시기였다. 일반적인 교육 과정은 문제 없이 이수하는 정도를 넘어 최상위권의 성적을 내었지만, 군사훈련에 임할 때는 미적지근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군사훈련의 학년 최종 평가 자리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교사들과 양부모가 이유를 물었을 때, 파빌라는 ‘생각할 것이 있었다’고 답한 뒤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재시험은 치러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유급 처분을 받아들였고, 두 번째 1학년에 일반 과목과 군사훈련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의 높은 성적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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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때도, 3학년 때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성적을 받았다. 파빌라의 첫 번째 1학년 생활을 아는 교사들은 아직까지도 그가 군사훈련만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하나, 본인이 당시를 없어진 시간처럼 덮었기 때문에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오점으로 남은 한 번의 유급 기록을 제외하면, 파빌라 리우는 학교 구성원에게 신뢰받는 우수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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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한 동아리는 교내 방송을 담당하는 방송부지만 여유 시간에는 연극부 활동에 객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직접 연극 무대에 오르지는 않으며, 이상으로 조명과 무대장치 연출을 돕는 진행 보조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단발적 도움으로 시작했던 것이 반고정으로 이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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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체로 원만하다. 종종 가게 일을 돕기에 손님으로 방문했던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는 일도 꽤 있다. 진중한 태도로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또 많은 사람에게 호의를 돌려준다. ‘믿고 중요한 물건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 ‘보증을 서줄 수 있는 사람’ 따위의 말을 듣곤 했으니 타인에게 보여지는 파빌라의 인상이 어떤지는 알 만했다. 성격이 무던하고 안정적인 만큼 겉으로 도드라지는 격렬한 갈등을 겪은 적은 없지만, 굽히지 않겠다 마음 먹은 부분은 절대 굽히지 않기에 드물게 언쟁은 있었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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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 가능하다면 의사가 되고 싶지만 가게를 이어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 생각하고 있다. 아직 눈앞에 무엇이 펼쳐질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저 막연한 꿈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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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요리. 자라온 환경 때문에 각종 음식과 조리법을 접할 일이 많았다. 자연스레 흥미를 가진 것이 꾸준한 취미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양친의 가게에서 주방 보조 일을 돕거나 직원식을 차려내는 것도 취미의 일환. 최근에는 가게에 선보일 몇몇 신메뉴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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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는 책이나 극본을 읽는다. 느리게, 그리고 꾸준하게 읽는 편. 고요한 곳에서 하나에 집중한다는 감각 자체를 좋아하기에 백과사전부터 시작해서 동화책, 철학서, 만화책까지… 읽는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제목만 보아서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책들은 도대체 어디서 발굴해 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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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호주머니도, 따로 들고 다니는 주머니도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내용물에는 전혀 일관성이 없다. 바닥을 굴러다니던 지우개, 어딘가에서 떨어진 단추,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는 사회에서 왜 발견된 건지 알 수 없는 동전, 주사위, 조약돌, 몽당연필, 종이뭉치……. 파빌라는 들고 있는 것들을 언제 얼마나 쓰게 될지 모른다는 명목으로 각종 잡동사니들을 끌어모았다. 녹틸루카의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파빌라에게 잡동사니-혹은 쓰레기-를 건넨 경험이 있을 테다. 선호하는 종류는 지우개나 연필, 다 쓴 펜 등의 학용품. 학생이라 그런지 학용품을 허공에 던질 때의 촉감이 가장 익숙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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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은 붉은 색. 이상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색이니만큼 남다른 애정을 느끼고 있다. 소지품의 색도 다홍색, 진홍색, 연홍색 등의 붉은 계열을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싫어하는 것은 맛없는 음식.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식사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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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까다롭지만 식사량은 많은 대식가. 요리에 취미를 붙인 것에는 이런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균형잡힌 맛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조미가 강해서 맛의 균형이 무너진 음식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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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탯 및 선언
공격 1 / 방어 0 / 기능 1
선언 - 자애, 은총
관계
미그머그 모로포프
접촉하는 것을 먹는 이상을 가진 학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분명 다른 사람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것을 먹어치우기 직전인 이를 마주쳤을 때는 파빌라라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 물건 대신 먹을 것을 건네주어 미그머그를 돌려보낸 이후로 종종 그의 손이 비어있을 때 잡동사니나 간식을 챙겨주곤 한다. 주변을 서성이는 기척이 느껴지면 주머니를 여는 것은 파빌라의 습관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미그머그를 이해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잘 구워진 빵보다 숯에 가깝게 탄 빵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탄야 모티머
치료 시에 지나가는 열감은 일순간이나 상처 부위에 얹어지는 또 다른 통증을 기꺼워하지 않는 이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얼굴만 마주쳐도 줄행랑을 치는 사람은 탄야 모티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고…… 파빌라는 생각했다. 다행히 파빌라가 탄야에게 간식 꾸러미를 건네며 놀래킨 것을 사과한 후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으로 말을 튼 게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인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무르게 대하는 편. 어느 순간 불쑥 찾아와서 매달리곤 하는 탄야의 어리광을 담담히 받아주는 모습은 천직이라 느껴질 만큼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리 하오 위
불꽃을 닮은 소년은 특유의 호쾌한 목소리로 가게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길을 잡아끌었다. 파빌라는 오래지 않아 이 붙임성 좋은 손님과 말을 트게 되었다. 녹틸루카 제1고등학교의 학생과 입학 지망생으로 만난 비슷한 듯 다른 이상의 소유자들은 서로의 능력 사용법이나 학교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친근해졌고, 이후 하오위가 녹틸루카에 입학한 후에도 종종 이상 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쁜 날 가게 일을 도와주다 접시를 몇 번 깨기도 했지만,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만은 고마운 친구. 파빌라는 하오위가 팔을 걷어붙이는 날마다 깨질 만한 것이 없는 일을 찾기 위해 머리를 쓰곤 했다.
멜키.Q.세덱
가까운 곳에 일터를 두고 있는 가족 간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나이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은 자연히 어울리게 되었다. 말하자면 소꿉친구로, 어느 날은 멜키가 만월각에 찾아오고 또 어느 날은 파빌라가 극장에 찾아가며 어린 날의 친분은 차츰 두터워졌다. 멜키의 부모님처럼 사교성이 없는 멜키가 다른 친구들과 더 폭넓게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은 본인부터 멜키의 좋은 친구로 남고자 노력하는 중. 때로 그가 몸을 사리지 않고 무언가에 몰두할 때마다 파빌라로서는 드물게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